여성서사 작가 인터뷰 〈불효녀로 행복하기〉저자 자유별
여성서사 아카이브 프로젝트 Warchive
'더 강하게 더 반짝이는 여성으로서 앞으로의 삶을 걸어가고 싶어요'
자유롭고 유별난 별, 자유별.
얼마 전 서울에서 200여명의 팬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진 그는
호주와 일본, 한국을 오가는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해주었다.
와카이브: 아티클에서 〈불효녀로 행복하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보자.

원고 중 ‘쓸 이야기가 많은데 벌써 100페이지가 넘어간다. 큰일 났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혹시 분량 조절 또는 내용의 흐름 등의 문제로 아쉽게 생략된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있다면 살짝 공개해 주세요.

아무래도 책 한 권으로 제 인생을 써야 했다 보니 독자분들이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도록 전체적인 흐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친척들과의 분쟁이나 외조부모님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셨던 일, 외조부모님이 사기꾼들에게 속아 재산을 날린 일, 또 소위 말하는 ‘노는 애들’이 제 물건을 훔쳐갔던 일 등이 자잘한 일들은 쓰지 않았어요.
또 제가 온라인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생활을 했다 보니 유튜브나 트위터, 블로그 같은 SNS에서 갑자기 배신을 당하거나 스토킹, 사이버불링에 시달린 적도 굉장히 많았고, 책에 언급이 되지 않은 전 여자친구 중 한 명에게는 10년에 가까운 사이버 스토킹을 당했지만 이러한 일들은 당했을 당시에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인제 와서 뒤돌아보니 제 인생에 크게 영향을 줄 정도의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배제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코스프레 팀에서 마음에 담았던 아이와의 자세한 이야기, 친동생이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간 이후의 삶, 아내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에 아내의 과거와 그로 인해 있었던 여러 헤프닝들과 같은 것들은 제 인생에 크게 영향을 준 사건들이기는 했으나, ‘저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제 에세이에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전부 썼다가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일들은 아내라면 흔쾌히 써도 된다고 허락해줄 것 같긴 했지만, 제 욕심으로 인해 사람들이 아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로만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마찬가지로 아내에 대한 자랑이나 저희가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서로 내적으로 성장해나간 이야기들도 잔뜩 쓰고 싶었는데, 행여나 연애나 결혼에 대한 장려처럼 받아들이시는 분이 계실까 봐 생략했습니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여성분들을 응원하고 싶어서 쓴 에세이였기에 처음에 책을 쓰기로 한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가능하면 저 한 사람만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피해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치부로 여기고 입을 틀어막죠. 자유별님은 그런 압박에도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주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셨어요. 주변의 여성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책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경험을 공유해주셨죠. 이 용기와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에세이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저는 약 20년 가까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제 얼굴과 실명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들을 전부 털어놓고 있는 만큼 공격을 받는 일도 많지만, 그만큼 제게 더 크게 공감을 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여성분들이 많아요.
처음에는 가정폭력이나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털어놓고 보니 자신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해주시는 여성분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오히려 제가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죠. 100번 욕을 들어도 단 1명의 생존 여성에게서라도 제 글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게 되면 그동안의 힘들었던 일들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진심으로요. 거기서 고립된 피해 여성 한 명은 나약할지라도 다 같이 목소리를 내고 서로에게 연대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보다도 강한 생존자들로 뒤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니 반복되는 불링에 지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더더욱 책이나 유튜브 영상 등으로 누구나 언제든 원하면 볼 수 있게끔 무언가 형태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제가 지쳐서 길게 쉬는 날이 오더라도 다른 여성분들이 언제든 제게서 봤던 희망과 용기를 찾을 수 있도록이요.
〈불효녀로 행복하기〉를 읽은 여성들이 눈물을 짓다가도 마지막에 행복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자유별님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커다란 포옹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은 여성들이 자유별님께 이 포옹을 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살아주세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나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 주세요. 희망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안전한 곳에 머물러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내가 정말 잘살게 되었을 때, 그리고 모든 게 괜찮아졌을 때, 힘들었을 시절의 나와 같은 다른 여성들을 위해 손을 내밀고 불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세요. 그렇게 등대가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밤이 긴 겨울에도 우리는 반드시 괜찮을 수 있을 거예요.

이번에 200여 명의 팬과 팬미팅을 진행하셨어요. 무려 호주에서 한국까지 날아오셔서요! 이번이 마지막 한국행이라고 하셔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혹시 언젠가 호주에서도 팬미팅이 열리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아서 이번 팬미팅도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이번 팬미팅을 통해서 그런 안 좋은 기억들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어요. 다른 여성분들이 제게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다고 말씀해주신 것만큼, 저 역시 여러분들 안에서 커다란 용기와 긍정파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래서… 네! 우리 호주에서도 꼭 만나요. 이번 팬미팅에 참여해주신 여성분들이 호주에 거의 다 와계실 2~3년 뒤쯤을 기약하고 싶어요. 그때부터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를 임파워링 할 수 있는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같이 여행도 가고 이번 팬미팅을 추억하면서 더 걱정 없이 웃고 떠드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앞으로 호주에 가게 될 여성들, 팬분들이 많을 텐데 호주에서 자유별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나 장소를 소개해 주세요.

Bowral
막연하게 캐나다에 이민할 생각을 하고 있던 제게 호주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장소예요. 저희가 농장을 제외하고는 첫 로컬잡을 구한 곳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아시안이 저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서 정말 호주다운 호주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곳이었어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에 호주가 얼마나 노동자에 대한 좋은 대우를 해주는지도 알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찾을 수 있는지도 배우게 됐죠. 친절한 마을 분들 덕에 호주식 크리스마스 파티에도 참석해봤고, 또 여기서 만난 분들 덕에 일자리도 소개받아 무사히 경력 점수를 채우고 영주권도 딸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제 결혼식에 증인으로 참석해주신 두 분도 Bowral 출신이랍니다.
아, 첫차도 여기서 샀네요!
Jacaranda
일본에는 벚꽃이 있다면 호주에는 자카란다라는 꽃이 있어요. 10월 말경인 초여름에 흐드러지게 피는 보라색 꽃인데 꽃이 만개할 즈음에는 바닥 한가득 떨어진 꽃들 덕에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물든답니다.
저도 아내도 이 꽃을 정말 좋아하는데 공교롭게도 저희 기념일이 10월 25일이라, 사귄 지 10년째가 되는 날에 올렸던 결혼식에도 자카란다가 함께 했답니다. 덕분에 웨딩사진이 정말 예쁘게 나왔어요. 그래서 신혼여행도 자카란다 나무가 1700그루나 심겨 있다고 하는 Grafton이라는 마을로 갔어요.

Kookaburra
쿠카바라는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머리가 큰 2등신 새예요. 이 새는 제가 Bowral에 살 때 처음으로 봤는데, 처음에는 발코니에 앉아서 가만히 저를 쳐다보고 있길래 너무 신기해서 멀리서 사진을 찍었어요. 호주는 비둘기보다 앵무새가 더 많은 나라고, 새들이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아서 새를 가까이서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이 새는 유독 사람이 코앞까지 다가가도 피하지를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쿠카바라는 육식이고, 가끔 이렇게 사람이 사는 곳에 내려와서 고기를 얻어먹는다고 해요. 그때 처음 본 쿠카바라도 이웃집 할머님의 저녁을 나눠 먹으러 왔던 거였더라고요. 그 뒤로 정글 속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원숭이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쿠카바라의 웃음소리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이 새와의 만남을 계기로 호주의 야생동물과 생태계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답니다.
덕분에 최근에는 아내와 새로운 야생동물을 찾는 것에 푹 빠지게 됐어요. 저희가 정반대의 성향이라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별로 없었는데, 호주가 저희에게 함께할 수 있는 취미도 만들어준 셈이죠.
Snowy Mountains

제가 겨울과 눈을 좋아해서 우연히 지도에서 이 지역을 발견했다가 눈여겨보고 있었는데요, 글쎄 정말 눈이 내리는 산이라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아내와 여행을 다녀왔죠. 7월부터 눈이 오는 이곳은 정말로 하룻밤 만에 눈이 잔뜩 쌓여서 스키나 스노보드 등 겨울 스포츠도 즐길 수 있게 되어있더라고요.
날씨 때문에 캐나다 이민을 생각했던 저였는데 날씨만 보고 다른 나라에 갔다가는 정말 크게 후회할 뻔했죠. 알고 보니 호주는 땅이 너무 넓어서 1년 내내 거의 시원한 기후를 가진 지역도 있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추운 지역도 있었어요. 저의 편협한 시야를 깨뜨려준 첫 장소여서 그런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불효녀로 행복하기〉는 한국을 떠나 자신만의 낙원을 찾아갈 여성들 그리고 이미 해외에서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해외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으로 아직 발을 떼지 못한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책에서 못다 한 말이 있다면.

한국에서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해보셨을 정도로 괴로움, 외로움, 소외감을 느껴보신 여성분들이라면 해외 생활 정말 별거 없을 거예요. 그냥 언어와 외모가 좀 많이 다른 사람들이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여유로운 나라에 모여 사는 것일 뿐, 결국 금세 다 잘 적응하고 살게 되실 거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한국에서 살아남으신 멋진 전사들이니까요. 해외 생활이 정 안 맞으면 또 뭐 어때요? 새로운 세상을 보고 돌아가면 돌아가는 대로 ‘한국이 더 나았구나’ 하고 전에는 몰랐던 감사함을 느끼며 전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죠.
이민 별거 아니에요. 인생에는 정답도 없고, 성공이나 실패 또한 없어요. 그냥 본인이 본인에게 맞는 행복한 삶을 찾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인생이라는 건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요.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호주는 어떻게 보면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사회죠. 그 안에서 내가 평생 이방인이라고 느끼며 소외감을 가질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할지는 다 본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해요.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지만, 딱 하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있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거든요.

바퀴벌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홋카이도 주민들은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대요. 사람의 뇌는 때론 바보 같아서 흔들다리 효과처럼 두려움과 설렘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대요. 해외 생활이 쉽지 않다, 외국에 가면 늘 소속감도 못 느끼고 외로울 거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귈 수 없다, 해외에 나가면 비로소 애국심이 커진다 등등,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거짓된 공포심은 아닐까요? 지금 떨리는 그 감정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불안함도 가슴 뛰는 기대감에서 오는 감정일 거라고 우리 자신을 속여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 안돼라이팅, 아니시에이팅은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나 하나만큼은 나 자신을 믿어주기로 해요. 세상이 여성들에게 하는 억까와 밸런스를 맞추려면 조금은 과한 ‘돼라이팅’을 해도 될 것 같아요. 사람은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변하기 시작한대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꿔오기만 했던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어요. 다 잘 될 거예요. 반드시 할 수 있어요. 제가 늘 응원할게요. 당신을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