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인 내가 하기 좋은 일 말고, 나라는 여자도 하기 좋은 일을 찾아서
노동의 성별화는 집 밖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남자 하기 좋은 직업’은 없는데,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후자는 대부분 돌봄을 전제로 하는 노동일까. 내가 하고 있는, 하기로 한 직업은 온전히 나의 판단에 의해 주체적으로 선택된 것일까. 일하는 여자, 일하기로 마음먹은 여자들은 반드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여초 업계 출신으로 지금은 ‘직때녀’ 당사자이기도 한 이슬기와 서현주 두 사람이 서른두 명의 여초 업계 근로자들을 만나 대화한 기록이다.
직업 선택에서마저 자유롭지 못한 여자들의 욕망
수도권에 비해 여전히 남아선호 사상이 강력한 지방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은 강력하게 ‘지역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인프라가 뒷받침되는 수도권이나 해외로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은 ‘여자 하기 좋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라는 은근하지만 확실한 협박과 강권에 번번이 꺾여 왔다. 전후세대 여성들에게 대학 진학 자체가 언감생심 넘보지도 못할(남자 형제가 있다면 더더욱) 선택지였다면, 대학 입학 정원이 크게 확대된 1990년대 초중반 전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는 ‘서울 유학’이나 ‘비-여초계열 진학’이 그런 선택지가 된 것이다.
여자에게 더 많은 직업의 ‘레퍼런스’를
특정한 직종 내 여성 비율이 10%p 높으면 평균 임금은 1.4%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다른 모든 변수를 통제했을 때의 결과로, 여초 직종에 근무하는 여성은 성별만을 이유로 남성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이다. 심지어 여초 직종 내부의 업무마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배정되고, 여성 근로자에게는 사회화된 돌봄노동이 직업이라는 이름 아래 더욱 높은 강도로 요구되나 동시에 전문성은 폄하 당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가정의 돌봄노동은 GDP에도 계상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인데도 누구나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레퍼런스이다. 따라서 여성이라면 누구든지 잘할 수 있으며 잘해야 한다는 편견이 작동한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성별에는 귀천이 있기에, 여자라서 당연히 무급노동을 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자란 여자들 앞에는 의사, 공학자, 사업가, PD 대신 교사, 간호사, 비서, 방송작가처럼 여자가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직업만이 선택지로 놓이곤 했다.
여초 노동 환경, ‘아이 낳고 키우지 않는 여자’도 있다
흔히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은 비혼 여성에게도 좋은 선택지로 여겨진다. 공립학교 교사와 공무원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희박하고, 간호사는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인 현행 보건 의료계의 실태 상 ‘장롱 자격증’으로도 언제든 업계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성은 채용 과정에서부터 불이익을 겪고 팬더믹 같은 전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도 남성에 비해 쉽게 노동시장에서 이탈한다. 심지어 같은 조건을 갖춘 여남 근로자 간에서 임금 차별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계수 효과 비중’은 2017년부터 5년 새 57.8%에서 56.7%로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성별로 인한 임금 차별이 덜한 직업, ‘철밥통’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나서는 것은 응당 합리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여자한테 좋은 직업’의 이점이 과연 비혼 여성에게도 적용될까. 해가 갈수록 혼인율과 출생률은 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임신-출산-육아라는 생애주기를 반드시 거치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비혼 비출산을 선택한 여성이, 업무와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초 직군에서 근무할 때 업무 공백이 발생한다면 그 격무는 주로 누가 도맡게 될지 생각해 볼 일이다.
뛰쳐나가는 여성들, 남아서 바꾸는 여자들
절대 직장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주문처럼 외우며 꾸역꾸역 버티는 것만이 능사일까. 도저히 견디지 못한 ‘직때녀’들은 어디로 떠나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부장적 교사상이 요구되는 교육 현장에 순응할 수 없어서 시민 활동가로 전직한 수학 교사, 한국 의료 현장의 ‘태움’을 뒤로 하고 미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간호사, 현직에서의 경험을 살려 창업한 CEO. ‘직장 그만두면 망한다’던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학교 밖, 병원 밖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일을 때려치운 여자가 있다면 일터에 남기로 결심한 여자들도 있다. 30년째 노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간호사, 보육교사들의 유일한 노조에서 보육지부장을 지내고 있는 보육교사, 교직원 노동 조합에서 여성 부위원장을 맡으며 남성 위원장-여성 수석부위원장 후보를 뒤집고 여성-여성 선본을 꾸려 출마한 선생님. 직장에 떠나든 남든, 이들에게는 ‘사는 게 원래 다 그렇다’고 자기암시를 거는 대신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저자들도 밝히듯 이 책은 직장 그만두는 팁이나 ‘그래서 뭐 해 먹고 살 건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대기업 퇴사하고 프리랜서 전직하는 썰’ 유의 책과도 다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네가 이 일 말고 뭘 더 할 수 있을 것 같냐’며 불안과 공포를 자극함으로써 여성을 계속해 착취적인 시스템 아래 두려는 압박에 저항하며 삶의 터전을 바꾸는 여자들의 경험담이다. 어제도 오늘도 ‘이 일’이 ‘내 일’이 맞는지 고민한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들에게 내일은 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되기에 충분하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이슬기, 서현주
지금까지 여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선택’했을까?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여성 종사자가 남성 종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여초 직업이라 일컬어져 온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 직군에서 왜 여성들이 많이 일하게 되는지 진로 선택 단계부터 가해져 온 억압의 기원을 파헤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여자가 갖기 좋은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포장되어 온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가 진정으로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었는지를 과거와 현재에서 서로 공명하는 퇴직/재직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끈질기게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