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마스터 과학의 지배자 과학의 신, 여성 과학기술인상 수상자들을 찾아가다

‘여성들이여, 과학과 공학을 선택하라!’ 이공계 진학을 선택한 여학생을 북돋우는 이런 말을 외치면, 어김없이 ‘여학생들은 수학, 과학 영역에서 천재적인 남학생을 이길 수 없다’는 반론이 따라붙는다. 정말로 공학과 과학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는 일부 남성들만 잘할 수 있는 영역일까? OECD가 실시하는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은 수학·과학에서 성차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국가이다. 특히 PISA 2022 평가에서 한국 여학생의 평균 점수는 수학과 과학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상승했으며, 이공계 교과목 학업 성취도에서의 성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성차별적 통념 하에서, 여학생들의 이공계 과목 학업 성취도는 실제로 낮아질 수 있다. 2006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남학생들이 수학에 우세하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뒤 수학 시험을 치른 여학생들은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연구에서는 여성 차별이 심한 국가일수록 여남 학생 간의 수학 성적 차이가 크다는 결과도 발견해 냈다. 사실이 아니라 선입견에 불과한 생각조차도 여성의 성취를 막을 수 있다면, 이에 맞서 싸우려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여성은 이공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반례라면 가까이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2001년부터 매해 ‘올해의 여성 과학기술인상’을 지정해 시상하고 있다. 『과학 하는 여자들』을 통해 여성 과학기술인상에 선정된 여성 과학자들의 생애와 연구를 살펴보자. 이공계를 선택한 여성들에게 기꺼이 역할 모델이 되어줄 이들 다섯 명의 이야기를 찾아가 보았다.

miRNA에 빠진 미생물학자, 변치 않는 진리를 찾아간 정수론자

세계 최초로 miRNA 생성 과정을 밝혀내고 한국인 최초로 유럽분자생물학기구 회원이 된 미생물학자 김빛내리 교수.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춘 그조차도 한때는 경력 단절을 걱정해 사법고시 준비를 해보기도 하고, 개인 빚을 2억 원씩이나 지면서 연구에 매진하다 위암 판정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도 여성 과학자로서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컸음에도, 그는 더 많은 여학생들이 과학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과학을 좋아한다는 확신만 있다면 나머지는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수학자 최영주 교수는 대학 시절 젊은 여성 교수들이 원서를 들고 수학 강의에 매진하는 모습에 학문의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최영주 교수는 사춘기 시절 ‘변치 않는 진리’가 무엇일지 고심하던 것을 계기로 수학에 빠졌다. 스스로가 수학에 재능이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없고, 여성이 수학에 약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단다. 대신 그는 수학자답게, 여성 수학자의 수가 적다는 사실이 여성은 수학에 약하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법과학, 미생물학, 의공학 분야에도 여성 리더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입사하고도 커피 타기 같은 잡일만 해야 했던 과학자도 있다. ‘여자 하기 좋은 일’을 찾아 떠나는 대신 ‘내게도 중요한 일을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마침내 2008년 국과수 소장으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법과학자 정희선의 이야기다. 미생물학자 이홍금도, 한림원에서 젊은과학자상을 받은 의공학자 박문정 교수도 한때는 남학생들만 가득한 연구실을 보며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좌절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시 태어나도 과학자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책에 실린 다섯 여성 과학자들의 일화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여성 과학자로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나에게 과학을 할 재능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과학을 좋아하는가?’라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의지 앞에서 다른 조건들은 어느 사이엔가 희미해진다. 그럼에도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거나, 고작 성별만을 이유로 내 갈 길을 반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다섯 명을 비롯해 앞서간 여성 과학자들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내 뒤에 오는 다른 여성이 나의 그림자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기억하면 좋겠다.




과학 하는 여자들

김빛내리, 박문정, 이홍금, 정희선, 최영주

한국의 여성 과학자 어벤저스 5인: 이공계 여자들의 꿈, 연구, 좌절 그리고 희망을 말하다

한국인 중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김빛내리 교수 등 이 책의 저자들은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자’들이다. 이 책은 5인의 여성 과학자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어린 시절 적성과 꿈 찾기, 공부하는 과정, 개인적인 고난과 극복, 연구 테마 찾기, 실험의 실패와 성공 등 일과 삶을 자전적으로 담아냈다. 그밖에 이야기 속에서 연구 주제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한편, 각 장의 뒷면에 관련 지식 소개, 진로에 관한 조언도 추가했다.

『과학하는 여자들』은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실제 삶과 일에 대한 지혜를, 남성을 포함한 일반 독자에게는 여성 과학자 또는 ‘유리천장을 깨나가는’ 여성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학생이라면, 여기서 소개되는 여성 과학자를 롤 모델 삼아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