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가장 값싼 무기, 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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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강간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끊이지 않는 전쟁,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가장 잔인한 범죄인 전시 강간에 대해 고발한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정전 상태이고, 전쟁의 위험은 사라진 게 아니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목받고는 있지만 그 외에 우리가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수많은 분쟁, 내전이 이어지고 있고 그 안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혹은 그 참상을 이해하려 들기엔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바쁠 것이다.

저자 역시 안전한 집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이 모든 일이 먼 나라의 문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피해자 여성들도 이런 일이 자신에게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침묵을 지키는 한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에 공모하는 것이라 말한다. 어떤 이는 이 말에 반감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몰랐을 뿐이야, 게다가 나는 당장 내 먹고살 일이 더 바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 말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평범한 개인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참견하고 시간과 돈을 쏟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알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강간 문제를 알려 하지 않음으로써 입는 피해는 고작해야 ‘당신은 공모자다’라는 비난에 기분이 상하는 정도다. 하지만 피해 여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입은 피해를 알리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다가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더러운 여자라며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취급당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도 몇천, 몇만 명의 여성들이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는지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공모자라는 별것 아닌 비난을 받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호명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감내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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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위에 쌓아 올려진 인류의 역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위안부’는 물론이고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여학생 납치 등 손에 꼽을 수도 없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피해 여성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각각 책으로 써도 부족하지만,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언급하는 것 조차 책에 전부 담기 버거울 정도로 피해자가 너무나 많다.

한국은 이틀에 한 명씩, 친밀한 관계의 남자에 의해 여성이 살해당하는 국가다. 이미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성범죄 피해를 입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어서 우리는 서서히 이 고통스러운 감정에 익숙해지다 못해 마비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는 유사 이래로 모든 여성에게 새겨진 체념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전쟁을 시작한 이래, 유사 이래로 항상 여성을 마음대로 강간하고, 죽이고, 전리품으로 삼아왔다. 그리스로마 신화만 해도 헬레네를 포함해 여자는 항상 ‘상’으로 주어졌으니까. 같은 여성들조차 전쟁 중 강간 범죄는 ‘흔히 있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전쟁은 살인을 승인했으니, 적어도 피해자들이 죽지 않았다면 강간이 살인보다는 낫다며 말이다.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음 처벌된 것은 1998년,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아카예수 판결을 통해서였다. 그 이전까지 수많은 전쟁에서 강간은 제대로 다뤄진 적조차 없었다. 강간이 범죄행위로 인정받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이 거대하고 끔찍한 문제의 마무리가 아니다. 그저 조그마한 시작일 뿐이다.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의료적 치료, 심리적 치료, 사회경제적 지원, 그리고 법률 지원과 가해자의 처벌이 필요하다.

2017년 우리는 #MeToo 운동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억한다. 수많은 여성이, 수많은 목소리가 서로의 용기가 되었다. 동시에 저자는 변호사를 구할 수도, 미디어에 접근할 수도 없는 여성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침묵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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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착각

강간은 성욕 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성욕을 주체할 수 없고, 눈앞의 여성에게 욕정을 느낀 것이라면 왜 가해자들은 자신의 성기가 아닌 나무 막대기로 여성의 성기를 쑤시고 장기를 훼손시키는가? 왜 딸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강간하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딸을 강간하는가? 왜 성인이 아닌 4개월 아기부터 여든여섯 살의 할머니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강간하는가? 강간은 피해자의 나이, 관계조차 고려하지 않는 잔혹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강간은 전쟁에서 가장 방치된 범죄이자, 전략적인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 여성의 존엄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하며 특정 민족이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말살하기 위해 사용된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강간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는 사회화 도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남자의 목소리로 쓰이기 때문에 전시 강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성주의자들에게 익숙한 수전 브라운밀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에서 “자신의 성기를 공포를 낳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남자의 발견은 최초의 조악한 돌도끼와 불의 사용과 함께 선사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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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사람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싸운다.

이 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전시 강간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지 묘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마음의 준비도 그 고통을 감당하게 해주지 않는다. 더 끔찍한 이야기를 품은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더는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피해 여성들은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졌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고 말한다. 시대도, 국가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한다. 그것은 곧, ‘나는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무너졌다는 고백일 것이다.

많은 사회는, 혹은 그 피해 여성 자신조차도 강간으로 인해 정숙한 여성의 자격을 빼앗겼음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여성의 가치는 ‘얼마나 순결하게 몸을 보존했는가’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은 사람이고, 사람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그러나 강간은 그것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범죄다.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드러낼 수 없다. 상기했듯이 피해자는 이제 더 이상 순결한 아내로서의 가치를 잃은 상품 가치가 없는 물건이며, 불행 자랑을 해서 동정심을 사려는 성가신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노하고, 싸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모든 역사에 촘촘하게 새겨진,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착취와 폭행에 대한 진실을 직시하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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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부터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 군대의 성폭행, 버마의 로힝야 집단 학살, 1994년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 야디지족 여성에 대한 ISIS의 만행까지, 저자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극단적인 고통의 증언을 전한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영아 피해자부터 “염소처럼 팔려다닌” 소녀, 가족 앞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인, 젖가슴이 잘려나가고 성기가 훼손된 피해자까지, 저자가 만난 여성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비극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의 여러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 성폭력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무기로 활용되는지를 밝혀낸다. 전시 성폭력은 그 규모와 빈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무시되는 전쟁 범죄다. 이 책은 이처럼 끔찍한 범죄에 대한 고발이지만, 동시에 생존과 극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독자는 상처 입은 여성 그리고 살아남아 일어서고 발언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