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나요?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는 여성이 겪는 불안을 소재로 한 8개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전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 ‘불안’에서 ‘안(安)’의 한자는 집 안에 여성이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집에서 편안했는가? 이 물음에 흔쾌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불안은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로는 집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여성’으로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그 요구에 응할수록 불안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사라지는_건_여자들뿐이거든요_이미지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불안’은 떼어놓을 수 없는 얼룩과도 같다. 나의 가치를 외부에서 인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에 불안을 외면해야 존재할 수 있다. 여성이라서 겪는 불안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피해망상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유롭게 드러낼 수조차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 가려운 곳을 긁어준 듯, 몸집을 부풀리던 물풍선이 마침내 터져버린 듯 시원했다. 맞다.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명료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다.

사라지는_건_여자들뿐이거든요_이미지

이전의 여자, 이후의 여자

8명의 여성 작가가 그려내는 8개의 세계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 세계 속 여성들은 모두 어딘가 어긋나있다. 사회는 이들이 가진 결함을 허락하지 않기에 이들은 분열을 겪다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인물들이 겪는 불안은 끝내 해소되지 못하고 찜찜하게 끝난다. 마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바라는 듯 열려있다. 마치 먼지 쌓인 서랍 속 미제 사건 기록물을 열람한 듯한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이 기록을 본 당신에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당신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사라지는_건_여자들뿐이거든요_이미지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저자: 강화길, 손보미, 임솔아, 지혜, 천희란, 최영건, 최진영, 허희정

여성의 불안을 매혹적으로 형상화한 ‘고딕-스릴러’ 테마 소설집. 강화길, 손보미, 임솔아, 지혜, 천희란, 최영건, 최진영, 허희정, 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젊은 여성 소설가 8인이 2020년을 살아가는 여성이 겪는 불안을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