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모욕하며 쌓아올린 ‘걸작’에 이별을 고하다
여성들은 언제까지 문학에서 이런 모욕을 경험해야 할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영화들을 오랫동안 사랑해 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감독 셀린 시아마가 르 몽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면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봤던 작품들을 더 이상 예전처럼 즐길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사회에서 명작으로 꼽는 작품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작품조차도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소위 ‘걸작’이라고 꼽히는 작품들을 분석한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에게 작품성이 뛰어난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을 멋대로 왜곡하고, 폄하하고 평가하는 문제적인 작품이다.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 《안녕 내 사랑》, 《위대한 개츠비》, 《나자》, 《그리스인 조르바》, 〈날개〉, 〈메데이아〉 총 8개의 작품을 다룬다. 어디선가 들어본 작품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각 작품이 여성을 규정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것은 좋은 의미에서의 다양함이 아니다. 작품 속 여성 인물들은 악녀, 속물, 거짓말쟁이, 정신질환자 등으로 묘사된다. 고결하고 이성적인 남성 주인공(또는 화자)과 달리 열등하고 비이성적인 여성 인물은 ‘굿 걸과 배드 걸’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결국 그들은 ‘정의로운’ 남자에 의해 응징을 당하는데 그 과정이 다소 유희에 가깝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여성 인물들의 위해 일종의 ‘진혼굿’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품 속 여성 인물의 서사를 재조명하고 재해석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문화 권력에 균열을 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말괄량이 길들이기〉 4막 1장의 판화. 페트루키오가 신혼 저녁 식사를 거부하며 폭력을 쓰는 장면(게오르그 골드버그, 1850)

▲남편 이아손의 배신으로 두 아이를 죽여 복수하는 메데이아(프라도 미술관)
100년 전 책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고 전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남성 중심의 문화 권력 속에서 남성 예술가의 성범죄를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에 너무도 쉽게 용인해 왔다. 이런 문화 예술계의 병폐는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을 고발한 미투 운동으로 인해 수면 위에 떠올랐다. 책에서는 미투 운동을 언급하면서, 성범죄자가 제작한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도 한 인간의 삶보다 가치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삶에 피해를 준다면 더 이상 예술일 수도 없고 예술이어서도 안 된다.

▲미투 운동 당시 시위 장면 “Can You Hear Me Now?” ⓒAlec Perkins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이 아니었다면 이전과 다름없이 소비했을 수많은 여성혐오적 작품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모욕적인 작품은 시대의 저편에 사라질 필요가 있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예술의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이미 그 시대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타자를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예술적 사기다.”
타자화된 채 박제된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
여성의 관점으로 ‘고전’, ‘걸작’의 조건을 질문하다
저자: 한승혜, 박정훈, 김용언, 심진경, 이라영, 조이한, 정희진, 장은수
발행처: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