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속에서 ‘형사의 길’ 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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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박미옥, ‘형사’ 박미옥

책날개에 저자의 이력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최초의 강력계 여성 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무수한 기록을 읽어 내려가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대단한 여성이 있나, 하고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최초의 OO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남자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해왔던 것을 이제서야 한 여성이 해냈다는 것에 자랑스러움과 존경을 느끼는 동시에 여성이 박탈당해 왔던 수많은 기회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한 무수한 능력들, 그리고 조금 더 삐딱하게 보자면 남자들이 ‘넌 여자인데도 이걸 할 줄 아네?’ 라며 내려다보듯 칭찬해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모욕감이 따라온다. 2022년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한 챕터가 있다. 여경 무용론이라 하면 아, 하고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한 인터뷰에서 사건 당시 함께 있던 상당한 경력을 가진 남경찰과 갓 1년 차인 신입 여성 경찰 중 유독 여성 경찰만이 지탄을 받은 것에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경’이라는 존재 자체가 희귀했던 그 시절부터 근무해 온 저자가 받은 크고 작은 여성혐오에 대한 경험이 이 책 전체에 깔려 있다. 때로는 별 것 아닌 듯 말하는 저자의 담담한 문장 한 구절에서, 때로는 ‘립스틱 정책’, ‘냄비’, ‘화장은 안 하냐, 여형사는 얼굴마담 아니냐, 결혼은 안 하냐’ 등 스스럼없이 여성혐오 발언을 하는 상대에게 단호하게 ‘그것은 여성 비하 발언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저자가 여성 경찰관으로 살아오며 얼마나 다양한 혐오와 압박을 받아왔을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여형사가 남형사의 보조 역할, 도구 역할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를 보며 형사의 꿈을 꾼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다시금 여성에게 턱없이 부족한 롤모델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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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는 노동이 아니다

책의 2부에서는 집창촌 단속을 하러 간 일화가 나온다. 한 남성이 술김에 미아리 집창촌에 갔더니 알고 지내던 동생이 있더란다. 그리고 그 동생을 빼내야 한다고 제보하더란다. 성착취를 하러 간 남성의 알량한 양심은 아는 동생을 만나서야 동한다. 한국은 남자와 술에 한없이 관대하며, 술 취한 남자에게만은 무한한 포용력을 보여준다. 여성을 물화하고 페이강간을 하는 것이 ‘술김에’ 할 수 있는 일이라니. 하지만 세상에는 이 사실에 분노하는 여성보다 남자라면 얼마든지 ‘술김에’ 여자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분노하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여성인데도 페이강간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 여성도 많다.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라 부르는 사람들 말이다. 저자는 집창촌 단속을 위해 손님처럼 위장하여 쇼를 본다. 전라인 여성이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동전 낳기, 바나나 쓸기, 이름 쓰기 등 역겨운 행위를 행한다. 돈을 주고 받기만 한다면 ‘주체적으로 성을 팔 자유’라는 명분 아래 여성의 존엄이 짓밟혀도 괜찮다는 것인가? 저자는 이 쇼를 보고서 이 쇼를 가르치는 무리를 폭력으로 처벌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어야겠다는 울분 섞인 결심을 했고, 이때의 기억은 성매매 여성들이 선급금을 받고 일을 시작했어도 불법 행위를 시키기 위해 준 돈이라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아무리 성매매 업소를 단속해도 세상에는 성매매라는 이름의 성폭력을 ‘노동’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존재하며 변종 업소들이 끊임없이 탄생한다. 여성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는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노동이라는 이름을 달아서도 안 된다. 저자는 사라지지 않는 성범죄를 쫓으며 결론을 내린다. 성범죄 단속과 검거가 희망 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일이라도, 이렇게라도 해야 지옥을 한 뼘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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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줄여나가는 여성들

1990년대 탈옥수 신창원 사건, 2000년대 연쇄살인범 유영철·정남규 사건, 2008년 서울 숭례문 방화 사건의 화재 감식, 2010년 서울 한강변 여중생 살인·시신유기 사건, 2011년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 등, 한국을 뒤흔들었던 큰 사건들을 맡아 해결했던 형사 박미옥. 한때 형사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수갑 채우는 맛’이라고 답했던 그는, 지금은 그 말을 부끄럽다고 말한다.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불같은 열정과 함께 사람을 향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 형사를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지옥을 한 뼘 줄이기 위해 일했다”고 적었지만, 실제 인터뷰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최소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상 안에서는 그 원칙이 지켜지길 바라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33년 3개월간의 근무를 마치고, 그는 제주도에서 여성 후배 형사와 함께 한 마당을 공유하는 각자의 집을 지어 살아가고 있다. 그에겐 롤모델이 없었지만, 이후의 여성들은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와 같이 지옥을 줄이기 위해 움직이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기준점이 되어 신념을 나눌 수 있다면, 지옥은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형사 박미옥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양천서 최초의 마약수사팀장, 강남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

본인이 세운 ‘최초’의 기록들을 스스로 갈아치우며

여형사의 새로운 역사를 쓴 형사 박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