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저자인 여자는 웬만큼 다 미쳐 있다

1부 나의 고통에도 이름이 있나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의료인과 비전문가를 비롯한 모두가 여성의 정신이 불건강한 원인과 책임을 에스트로겐에 돌리곤 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하미나 작가는 여성이 우울한 원인을 호르몬으로 한정하는 태도가 여성이 겪는 사회문화적 차별을 지워버린다고 지적한다. 남성만을 표준적 몸으로 여겨 온 의학은 여성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다. 여성은 태생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주류 학문의 담론으로 제대로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을 겪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우울한 여자들은 스스로의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루어야 할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단 하나의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은 저자 하미나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젊지만 우울한 여자’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교류하고, 이들이 우울의 원인을 지목하고 대응해 나가는 과정을 추적한 기록이다.

2부 죽거나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

가족, 사랑, 사회. 이것은 2부에서 다루는 세 가지 테마이자 저자와 인터뷰이들이 자신들의 우울과 분노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이어지는지 지목한 대상이기도 하다. 저자를 포함해 저자가 만난 여성들 그 누구도 우울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가족들이 보호자이자 울타리인 동시에 폭력의 가해자이자 방조자일 수 있다는 것도,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있지만 남성과의 일대일 로맨틱 관계에 씌워진 환상이 여성들에게 해롭다는 사실도, ‘여성착취 권하는 사회’가 ‘아픈 여자’를 얼마나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는지도.

그래서 이들은 ‘여성 우울중의 원인은 에스트로겐’이라는 나이브하고 손쉬운 진단에 멈춰 서서 스스로를 비정상인으로 규정하고 끝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의 분노에 이름을 붙이고, 거리로 뛰어나와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고,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기를 선택했다.

3부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여성의 우울을 다루면서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2017년 이후 한국의 성별별, 세대별 자살률 증감 추이에서 2030 여성 청년의 자살률은 남성이나 다른 세대와 달리 단 한 해도 감소 추이로 돌아서지 않고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성 자살에 대한 논의는커녕 그 원인과 책임조차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찰청이 발표한 경찰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1년 여성 청년의 56.98%는 ‘정신적 문제’로 자살했다고 하나, 애초에 ‘정신적 문제’란 무엇인지 분명치 않으며 실제 자살 충동을 느낀 여성 청년들이 지목한 주요 원인(경제적 어려움, 직장 문제)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작가가 인터뷰한 우울한 여자들은 그저 병에 잡아먹힌 희생자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스스로의 주체성과 존엄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다른 여성을 돕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무책임하게 낭만화하거나 반대로 ‘정상이 아닌 나’를 무조건 부정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젊은 여성들의 우울증을 탐색하는 과정이 ‘고통에 대처하는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기 상황에서 새롭고 자발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고, 타인의 고통을 폄훼하거나 섣불리 지워버리지 않고, 취약함을 공유하고 내보이는 것. 상실한 것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 이 책을 읽은 당신이 새롭게 쓸 결말을 정한다면, 꼭 다른 여성들 모두에게도 알려주기를 바란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질병과 낙인 너머, 공동의 우울에 관한 가장 치열하고 다정한 탐구. 불안과 우울의 파편을 모아 2030 여성들의 언어로 ‘우울증’을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