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전시 인터뷰 ⟪WAKE UP⟫, 우리 모두의 이야기

여성서사 아카이브 프로젝트 Warchive

한국 여성이 걸어왔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전시.

성신여자대학교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GPS가 지난 2024년 3월 진행한 전시 ⟪WAKE UP⟫을 요약한 한 줄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전시를 GPS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톺아보자.

전시 현장 이벤트 ⟨GPS가 코르셋을 대신 버려드립니다⟩
전시 현장 이벤트 ⟨GPS가 코르셋을 대신 버려드립니다⟩

성신여자대학교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GPS를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한다”

‘GPS’는 2018년에 설립된 성신여자대학교 래디컬 페미니즘 정동아리로, 가부장제 타파와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 행동하는 공동체입니다.

성신여자대학교의 정동아리를 넘어서, 여성을 포함한 많은 대중에게 페미니즘을 알리고자 지하철 옥외 광고 게시, 여성 연사 초청 강연 ⟨한다면 하는 여자들⟩ 개최, 비혼 여성 인터뷰 에세이 『그런 애들이 제일 먼저 비혼하더라』 발간, 비혼 여성 네트워킹 행사 ⟨Strexx Detox Party⟩ 개최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현재는 재학생과 졸업생이 모여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2030 여성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시 작품 ⟨홍등가⟩ (사진 제공: GPS)
전시 작품 ⟨홍등가⟩ (사진 제공: GPS)

GPS는 매년 지하철 광고, 다이어리•캘린더 제작, 포럼, 강연, 세미나, 전시회, 기부런, 파티 등 굉장히 다양한 방향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전에 해봤던 것이 아닌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굉장합니다. 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지, 또 처음 진행하는 행사의 실행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알려주세요.

‘GPS’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주위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시의성 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급변하는 사회와 페미니즘 흐름 속에서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세상에 알리려는 목적이 자연스레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활동을 시도한다는 것은 과거의 틀을 깨고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것이다 보니, 진행 자체의 어려움뿐 아니라 과거 프로젝트를 넘어서는 성공을 이뤄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방학이라는 짧은 프로젝트 기간에 적은 인원으로 높은 퀄리티를 내야 하는 한정적인 상황도 어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이루지 못할 프로젝트를 ‘GPS’와 함께 실현할 수 있다는 것, 공동체의 구성원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해 서로를 믿고 매번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여성들에게 위로의 손을 건넨다는 것, 나아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좋은 변화를 주고 있다는 확신으로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전시 작품 ⟨자, 다들 가위를 듭시다⟩ (사진 제공: GPS) 1전시 작품 ⟨자, 다들 가위를 듭시다⟩ (사진 제공: GPS) 2
전시 작품 ⟨자, 다들 가위를 듭시다⟩ (사진 제공: GPS)

이번 전시는 4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사진, 오브제, 영상, 일기, 참여형 작품 등 참신하고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디어 구상 및 작업, 그리고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전시를 기획하며 어떻게 하면 기획 의도를 더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자기만의 방’처럼 챕터마다 구분된 방으로 연출하여 변화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하는 의견도 있었고, 컨셉츄얼하게 ‘동화 속 세계’를 바탕으로 진행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오랜 논의 끝에 기획 의도인 대한민국의 현대 여성이 페미니즘을 접하고 탈코르셋과 백래시를 거치는 양상을 단계적으로 보여 주며 공감과 충격을 끌어 내고, 백래시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아갈 방향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자 동화 속 세계에 현실을 투영하여 이해를 돕는 방안을 선택했습니다. 더불어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키 비주얼과 포스터에 그리스 설화 ‘나르시스’를 차용해, 우리를 옭아매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 주는 수면 아래 공허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허상인 물속을 대조하여 허상에서 ‘깨어나자(Wake up)’는 의미를 표현하여 더욱 의미 있는 연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시에서 탈코르셋과 백래시를 거치는 양상을 표현하기 위해 무지, 혼란, 각성, 백래시로 구성하여 기획하였습니다. 그중 무지를 연출하며 ‘꽃이 예쁘다 한들 너보다 이쁠까’의 문구를 담은 네온사인을 제작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전시의 기획 의도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요소이지만,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인 ‘GPS’의 이름으로 해당 네온사인을 주문한다는 사실에 괴리감이 들어 웃픈 경험이었습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로는 리본 끈으로 표현한 마네킹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 연대의 의미로 자신의 소지품이나 손가락에 묶는 참여형 전시 ⟨자, 다들 가위를 듭시다⟩와 관련된 기억이 나는데요. 많은 분이 즐겁게 마네킹의 리본 머리카락을 잘라 참여해 주셨는데, 몇 분께서 연대의 의미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리본으로 묶은 후 마네킹 옆에 놓아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시 작품 ⟨자, 다들 가위를 듭시다⟩ (사진 제공: GPS)
전시 작품 ⟨자, 다들 가위를 듭시다⟩ (사진 제공: GPS)

전시회 성료 후 인상에 남는 관람객들의 감상이 있다면, 그리고 주최측의 소감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전시 작품 ⟨당신의 왕자님을 찾아보세요!⟩
전시 작품 ⟨당신의 왕자님을 찾아보세요!⟩

관람객의 고민과 연대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참여형 전시와 방명록에서 마음을 꾹 눌러 적은 글귀를 남기며 오랜 시간 머무르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여러 포스트잇과 방명록 글귀가 기억에 남지만, 백래시를 맞은 친구를 생각하며 방명록을 길게 작성해 주셨던 분이 떠오르는데요. 그 친구에게 티켓을 선물하시며 편지를 남기셨지만 결국 전시에 오시지 않아 한편으로는 백래시의 마무리를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며 그 메시지가 주인에게 닿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전시 당시에 백래시가 강한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동아리 내부적으로도 운영 지속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던 터라, 페미니즘에 지친 분이 많은 상황에서도 저희 전시에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고 와 주실지, 그리고 관람하신 분들께 저희 전시가 힘이 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걱정과 다르게 전시를 시작하자 사전 예매의 두 배가 넘는 많은 분이 찾아와 주셨고, 전시회를 보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오시거나 페미니즘을 알아 가는 친구에게 초대권을 예매해 주시는 등 많은 분들의 관심을 현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분들이 시간을 내어 전시회에 오셔서 서로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작성하시는 것을 보면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희는 아직도 방명록을 파일로 간직하고 필요할 때 가끔 보며 응원을 얻기도 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걱정하고 고민했던 백래시와 페미니스트의 소진 문제를 함께 걱정하고 맞서 나가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가득하고, 일체감과 연대를 함께 공유하는 순간이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만큼이나 많은 분이 전시를 통해 여성주의를 지속할 힘을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24년 2학기가 곧 시작되겠네요. GPS의 2024년 하반기 목표는 무엇인가요?

상반기에는 조직의 내실을 다지며 공동체를 오래 유지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면, 하반기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행동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여성 의제에 힘을 쏟으며 여성주의 논의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외부적으로는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정기 콘텐츠 발행, 페미니즘 논의를 노션에 정리한 프로젝트 ⟨전달하는 페미니즘⟩ 리뉴얼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시 작품 ⟨시뮬레이션_빡빡이의위기.exe⟩
전시 작품 ⟨시뮬레이션_빡빡이의위기.exe⟩

성신여자대학교를 지망하는 래디컬 예비 수정이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신다면.

숨 쉬며 활력 있는 여성주의를 경험하고 싶다면 꼭 오세요.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아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어요. 여성 공간에서 여자들과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 행운을 성신여자대학교에서, ‘GPS’에서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는 만큼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레이팅!